아루 / 노래의 왕자님 / 미카제 아이 / 나태











* 7대 죄악 합작 중 나태

* 우타프리 미카제 아이 드림

 

***

 

단풍이 질 시기, 초콜릿 머리색이 유독 예쁜 여자아이가 가방을 고쳐 매며 시립도서관 안으로 들어간다. 한참을 책장 사이를 두리번거리던 아이는 자기 몸집 보다 큰 책을 품에 안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들고 다니기 버거운 크기에 매우 얇은 책의 표지는 새 것처럼 깔끔했지만 모서리만은 망가져있었다. 이리저리 돌려가며 책 상태를 확인한 아이는 책을 툭하고 테이블에 내려놓더니 한 장, 두 장 넘기며 꼼꼼하게 읽기 시작했다.

 

*

 

서기 198년 기록

 

어느 인간이 마계로 올라가 토끼처럼 생긴 검은 주술사에게 저주를 걸었다. 이에 분노한 마녀들이 인간이 사는 땅으로 내려가 꽃을 피우면 다시는 물을 마시지 못 한다.’ 땅에 속삭였다. 꽃도, 열매나무도 피우지 않는 땅에 인간들은 음식을 먹지 못했고 이내 천천히 죽어갔다.

 

서기 221년 기록

 

검은 후드를 푹 눌러쓴 주술사가 비틀거리며 땅으로 내려오자 하늘색 머리의 인간이 벽 뒤에 숨어 그 모습을 바라봤다. 주술사가 땅에게 속삭이길 당장 꽃을 피우지 않으면 당신을 세상에서 없애겠습니다.’ 주술사가 말을 마치자 거짓말처럼 땅에서 꽃이 피고 나무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주변을 둘러본 주술사는 하품을 크게 하며 깊게 눌러쓴 후드를 벗었다. 새벽을 담은 머리는 짧게 잘라선 뱀같이 구불구불거렸고 머리장식은 일찍 일어나 하늘을 바라보면 반짝이던 무언가의 모양과 비슷했다. 하늘색 인간은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뒷걸음질을 쳤다. 안타깝게도 뒤를 바라보던 주술사가 천천히 뒤를 따라와 마을에 있는 자신의 동료에게 알리던 하늘색 인간을 데리고 마계로 돌아갔다.

 

서기 257년 기록

사라졌던 하늘색 인간이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56년 전 모습 그대로 내려와 저주에 씌었다는 마을 사람들의 반응에도 인간은 꿋꿋하게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 연보라색 쿠션을 들고 사라졌다.

 

서기 268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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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89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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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99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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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기록

 

책의 마지막까지 모두 읽은 갈색 아이의 눈이 마지막 문장에 멈췄다. 2015년은 작년 날짜인데 책이 만들어진, 묶여진 날짜는 2007년이다. 소름이 돋은 아이가 자신의 팔을 매만지며 도서관을 나가는 모습을 확인한 아루가 상공에 늘어져 연보라색 쿠션을 안고 있다.

 

귀찮게... 저 글자는 뭐예요?”

도서관. 책을 보관하는 곳이야.”

 

도서관이 뭔지는 알아요. 글자를 물었잖아요, 글자를. 풀린 눈으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구름에 묶여 흩어졌다. 검은색 후드, 새벽을 담은 머리색과 밤이면 하늘에 뜨는 반짝이는 형체를 담은 머리장식. 초콜릿색 아이가 읽은 책 속 내용의 인물이 허구가 아닌 현실로 도서관에서 9Km 떨어진 곳에 늘어져있었다. 곁에는 책에 쓰인 하늘색 인간으로 보이는 미카제 아이와 함께.

 

“.... 아이, 지금 저 책을 가져가면 분명 걸리겠죠?”

, 충분히.”

 

대답을 주는 목소리가 단호하게 해에 묶였다. 불만이 생긴 아루의 머리에 검은 토끼 귀가 쫑긋하고 튀어나왔다. 검은 후드 위로 튀어나온 귀가 답답한지 표정은 찡그리면서 몸은 축 늘어진 상태에서 미동도 없었다. 후드를 툭툭 치며 움직이는 귀를 본 아이가 손을 뻗어 내려주자 쫑긋거리는 귀가 인사를 한다.

 

그러게 왜 사람이 집을 박차고 들어오는데 그냥 누워 있던 거야, 깨어있으면서.”

귀찮잖아요. 어차피 인간이고...”

그래서 무슨 일이나 다른 차원으로 가면 저 책에 기록을 남기는 거야?”

 

하아. 길게 한숨을 쉬는 모습도 귀찮은지 손을 휘적거렸다. 오래전부터 움직이는 게 싫다며 게으르게 생활하던 마녀들 중 주술 계열의 소녀는 집으로 침입하던 인간을 잡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둔 적이 있다. 우습게도 무시하고 돌아다니게 둔 인간은 귀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이었고, 잠에 들려는 소녀에게 우스꽝스러운 주문을 걸었다.

 

미디라 후(Midira Hu)"

 

본디 이 마법은 과거 왕이나 귀족에게 사용하던 마법으로 도망치거나, 허튼 일을 꾸미는 걸 방지하기 위해 사용했었다. 그 시대 근래에 들어선 좋아하거나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악질적으로 거는 마법이었지만 설마하니 본인이. 그 귀찮은 마법에 걸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살의나 위해를 품고 왔다면 굳이 제가 움직이지 않아도 두르고 있는 마법이 지켜줄 테지만 큰 위협도 아닌 그저 기록을 적어두는 마법은 주변의 결계를 발동시키지 못 했다.

 

마법에 걸린 후에도 천천히 23년간의 잠에 들다 깨어난 소녀는 이내 손등에 적힌 문장 하나에 그 귀찮은 몸을 벌떡 일으켰었다. 급하게 후드 망토를 걸치고 내려오자 이미 주변의 친한 마녀들이 인간 세상의 땅을 마르게 협박을 한지 오래였다. 죽어가는 인간들과 동물, 꽃들에게는 죄가 없다며 땅에게 어서 모아둔 생명력을 피워내게 했고 화력을 도울 마법도 같이 불어넣었다. 땅에 깃든 요정들은 저주의 말이 도움을 주는 마법이라니 혀를 내둘렀지만 고맙다는 인사도 똑똑히 했었다.

 

땅을 돌려놓고 마법을 걸어둔 장본인을 찾으려 했지만 무언가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는 건 소녀에게 맞지 않았다. 위치가 노출된다 해도 위험한 일은 없을 테니 그냥 돌아갈까 싶었던 차에 주변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그냥 돌아가는 것도 힘든데 쫓아볼까..’ 짧은 충동에 발걸음을 옮겨 잡아온 인간이 앞의 미카제 아이. 딱딱한 인간에 귀염성은 가끔씩 보이는 정도, 긴 생각하지 않고 마계로 데려왔지만 무서워하는 기색도 없이 태연히 있는 게 마음에 들어 여기서 살지 않겠냐 권유했고 받아들였다.

 

마계라고 위험한 게 사는 것도 아니고, 장소의 차원이 다를 뿐이었다. 인간이라 영원을 사는 본인과 흐르는 시간이 다르다 생각했지만 점점 마음을 주면 줄수록 마음을 죄어와 똑같이 가볍게, 늘어지게, 툭 던지듯이. 단단히 마음을 먹고 물어봤었다. 고백과 다름없는 질문이었지만 머릿속에 자연스럽게만 들어있는 마녀는 캐치하지 못했고, 우습게도 연인으로 발전하는 첫 퀘스트를 성공했다. 뒤로 밝혀진 아이의 로봇이라는 정체와 차근차근 올라가는 연인으로 발전이라는 명칭을 단 퀘스트는 어렵지 않게 성공하며 30년 후에 연인이라는 타이틀을 따내었다.

 

게으르고, 식사조차 귀찮아하는, 나태함으로 똘똘 뭉친 사랑을 진행 중인 마녀의 행적이 담긴 책은 후에도 여러 도서관을 옮겨 다니며 그 기록을 바른 글씨체로 받아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