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성 / 블랙잭 / 블랙잭 / 분노
* BLD, 오리주 등장, 우울 주의
바닥에 강하게 부딪힌 맨살 신음했다. 입에서는 피가 흘렀다. 고개를 살짝 들어 위를 올려다보자 경멸에 찬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그가 보였다. 그는 평소에는 냉정하고 말 수가 적은 편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는 분노에 몸을 떨다가 결국은 나를 친 것이었다. 정확히 몇 대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거칠게 멱살을 잡혔다.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리고 저항할 기력이 없던 나는 텅 빈 손만 의식하고 있었다. 그가 멀리 집어던진 밧줄이 생각났다. 아, 조금 더 상황을 보면서 했어야했는데.
“하루키.”
“…….”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지?”
“…….”
“하루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거지?”
“…….”
끝내 아무런 대꾸도 들려오지 않자, 그는 난폭하게 멱살을 놓았다. 머리로 피가 쏠리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아찔했다. 결국 중심을 잡지 못하고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하루키,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야.”
여전히 화가 난 목소리였다. 나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에게 가르쳐줄 의무따윈 없었으니까. 내가 어째서 목을 매려했는지, 내가 무엇에 그리도 진절머리를 내고 절망했는지. 조용히 눈을 감고 조용히 썩어들어 갈 생각이었다. 내가 있든 없든, 그는 아무런 상관하지 않을 테고 더욱이나 찾지도 않을 테니까. 누군가의 눈길을 끌고 싶어서 이 짓을 저지른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그가 불길한 예감을 참지 못하고 나를 찾아왔고, 나는 때마침 밧줄을 매달던 참이었다. 그 광경을 본 그는 아주 잠깐 동안 얼어붙었다가 이내 고통과 분노가 반쯤 섞인 얼굴로 밧줄을 집어던지고는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도대체 그가 왜 분노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왠지 들켜버린 게 큰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조심스럽게, 아무도 모를 때 했어야 했는데. 그 생각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한동안 침묵만이 지속되었다. 나를 내려다보기만 하는 그와 입을 열지 않는 나. 그러나 차라리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됐으면 했다. 더는 나를 추궁하려고 들지도 않았으면 했다. 나를 정말로 안식으로 이끌어주지 않는다면 나를 비난할 자격도 없는 것이니까.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그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또 통하지도 않는 말로 나를 설득하려고 들 테니까. 나는 더욱 고집을 부려 미동도 하지 않고 바닥만을 보고 있었다.
얼마만큼 시간이 지났던 것일까. 그는 조금은 차분해진 목소리로 침묵을 깼다.
“하루키. 다시 한 번 묻지. 왜 그랬지.”
“너에게 설명할 의무는 없어.”
“난 내 앞에서 사람이 죽게 내버려두지 않아.”
“의사니까?”
“그래.”
“……난 네가 못 보는 곳에서 죽으면 그만이야.”
“하루키!”
“그만해. 날 설득하려고 하지 마.”
왜 나는 죽어서는 안 되는 걸까. 내 삶에 내가 지쳐서 그만 놓아버리겠다는 건데, 그게 어디가 나쁘다는 것일까. 왜 그는 자신이 의사라는 이유로 죽는다는 사람을 말리는 것일까. 의사 역시 살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왜 그게 내가 되면 안 되는 걸까. 언제나 그랬다. 그는 의사라는 직업에 의무를 다하면서도 가끔은 그 의무에 빠져서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지 않는다. 살려두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그 자신도 아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블랙잭. 하나만 질문하게 해 줘. 왜 나는 죽으면 안 되는 거지?”
“하루키…….”
“너도 살아갈 의지가 없는 환자는 살리려고 노력하지 않는데 왜 나는 똑같이 내버려두지 않는 거지?”
“…….”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으로, 메울 수 없을 만큼 커진 공백을 안고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라는 말이야. 누군가를 위해서, 라는 의무만으로는 나를 설득시킬 수 없다. 나는 성심껏 누군가를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성실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 해서 역으로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있다 하더라도 뿌리쳤을 것이다. 혼자가 좋고, 제멋대로에, 헌신할 힘도 없다. 그렇게 조용하고 부유浮游하게 살다가 때가 되면 잠을 자듯 떠나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싫다면 조금 요란하겠지만 스스로 끊어버리는 것도 결코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결과는 내가 받으니까. 그런데도 내 앞의 그는 그런 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틀렸다. 그게 아니다. 살아라. 나는 결코 인정할 수 없다. 무언 속에서도 그는 그리 외치고 있었고, 나는 그 부르짖음에 잠깐 고개를 돌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는 ‘사라짐’을 향한 욕구를 간직한 채.
“도저히 말 못할 내용인가보지?”
“…….”
“천하의 블랙잭 선생이 이렇게 설득력 없는 사람이었다니. 후후후…….”
정말이지 웃기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아까까지는 그렇게나 난폭하게까지 말렸으면서 지금은 오히려 내가 그를 추궁하는 꼴이 되었으니. 나는 작게 웃고는 그만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리에 힘이 없었지만 일어나서 걸을 수는 있었으니까. 입에 흐르는 피를 닦자 비릿한 향이 일었다.
“…블랙잭. 이만 가 봐. 너 때문에 다 엉망이 되었으니까.”
“…내가 사라지면 또 할 생각인가 보군.”
“오늘은 아니야. 오늘은 도저히 네 얼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테니까.”
“결국은 다시 반복하겠다는 소리군.”
“그래. 이번에는 네가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정말로 조용히 죽을 생각이야.”
그렇다. 정말로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오늘은 용하게도 찾아냈지만, 다음은 정말로 그조차 알 수 없는 곳에서 고요함 속에 떠나갈 것이다. 또 다시 방해가 들어온다면, 그때는 정말로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딜 가든 찾아줄 테니까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라.”
“말리는 이유도 제대로 설명 못하는 주제에 잘도 말하는데?”
“흥.”
우리는 다시 찾아온 침묵 가운데 아침을 맞았다. 나는 햇빛을 맞으며 멀리 널브러진 밧줄을 치우며 다음은 어디로 가야할지, 또 어떡해야 그가 나를 찾을 수 없을지에 대해 궁리했다. 둘이서 맞이하는 아침은 어쩌면 이것으로 최후가 될지도 모른다. 아니, 되도록이면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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