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기 / 앙상블 스타즈! / 히비키 와타루 / 시기














*이미 사귀고 있다는 설정

*오리주가 여러명 언급됩니다.

*신 유닛(스윗치) 성격이 밝혀지기 전에 쓰인 글입니다. 캐붕 多



















"네가 바로 와타루 선배와 사귄다는 그 계집애냐?"

"으응?"

"난 인정 못해! 결투다!"




*  *  *  *




"…라면서, 어제 갑자기 결투 신청 받았는데 어떻게 하죠?"

"Amazing! 그것 참 놀라운 일이군요! 후후후…☆"

"웃지만 말구요~ 진짜 곤란하다구요. 듣자하니 레이 쨩에게도 결투신청 하고 온 것 같구..."

"나츠메는 우리들을 무척이나 좋아하니까요. 질투하는 것이겠죠♪"

"대체 프로듀서랑 아이돌이랑 어떻게 결투하겠다는 걸까요오. 페코는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답니다... 도대체 뭘로 결투할 생각인지 와타루 선배가 한번 물어봐주면 안돼요? 응? 제발요~"


 페코는 최대한 우울하고 시무룩하지만 귀여워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제 남자친구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와타루는 후후후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다. 페코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녀는 현재 사카사키 나츠메라는 이름의 동급생에게 괴롭힘 아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섯 명의 기인들 중 텐쇼인 에이치에게 가장 무참히 당한 이후 종적을 감췄다고 들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누구에게서! 히비키 와타루에게 연인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온 건지 갑자기 나타나 결투하자며 장갑 한 짝을 얼굴에 던져버리니 페코는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라빗츠의 신곡 컨셉 회의랑 홍월의 새로운 유닛복 디자인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누구 놀리는 거야 지금?! 어엉?! 순간 울컥하며 숨겨왔던 그녀의 거친 본성을 사랑하는 와타루 선배 앞에서 내보일 뻔한 페코는 표정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사카사키 나츠메를 향해 이를 득득 갈았다.


 안 그래도 페코는 나츠메가 싫었다. 엄~청나게 싫었다. 바빠 죽겠는데 결투하자며 속을 뒤집어 놓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는 와타루와 같은 기인 동료로써 그에게서 엄청난 호의와 신뢰를 받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서 페코가 모르는 유메노사키 in 개판의 시기를 알고 있다. 2학년이 되어 프로듀서과로 전과하며 편입하기 이전까지는 아이돌과의 개판 역사와 전혀 상관없는 보통과에서 지냈던 페코는 그녀가 모르는 그 역사가 너무나도 신경 쓰였다. 심지어 그녀는 개판의 역사와 아주 관련이 깊은 유닛인 피네의 프로듀서인데도 그 때의 이야기를 한 톨도 몰랐다. 트릭스타의 프로듀서인 안즈가 개판의 역사를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물어도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텐쇼인에게 물어보니 후후 웃으며 대화 주제를 돌리고, 신카이에게 물어보면 제대로 된 말과 푸카푸카가 반쯤 섞여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 들을 수가 없는 말이 탄생했다. 이츠키나 사카사키에게 물어보자니 그들은 그 때에 텐쇼인에게 가장 많이 억압받았다는 두 사람이라 물어볼 수 도 없다. 페코는 아무리 개판의 역사가 궁금해도 타인의 상처를 파고 들 만큼 몰염치한 사람은 아니었다. 거기에 나츠메는 와타루와 같은 아이돌이 아닌가? 그가 원한다면 와타루와 같은 무대에 서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도 가능하다. 심지어 요비스테도 페코보다 더 먼저 했다! 지가 가진 게 더 많으면서 뭐?! 결투?! 이런 망할 개새, 헙. 페코는 불만을 쭝얼거리던 입에서 욕설이 새어나오자 급히 입을 막고 와타루의 눈치를 살폈다. 와타루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었다.


"욕은 나쁜 거랍니다."

"우에에... 죄송합니다아. 그치만 저 사카사키 군 때문에 스트레스 엄청 받았는걸... 장갑도 얼굴에 맞았다구요."

"얼굴에요?"

"네에. 어디서 뭘 보고 온 걸까요. 으응... 사카사키 군, 게임연구부라고 들었는데 게임에서 본 걸까나아."

"흐음, 그 점은 나츠메에게 말해야겠군요... 그런데 페코, 슬슬 컨셉회의 갈 시간 아닙니까?"

"어! 으아! 아! 늦었다아! 선배 미안해요! 먼저 갈게요오~!!"


 페코는 뒤에서 들려오는 잘 다녀오세요, 하는 목소리와 비둘기가 퍼덕거리며 날갯짓 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달렸다. 3학년 교실과 라빗츠의 연습실은 꽤 멀었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페코가 와타루 선배와 있었다가 늦었다며 말하자 마시로와 니토가 미묘한 얼굴을 하며 이해해주었다. 그녀는 어떤 귀여움을 컨셉으로 해야 다음의 드림페스에서 더 많은 팬라이트가 켜질까, 고민하며 자리에 앉았다.




*  *  *  *




"다녀왔습니다~ 으에, 피곤해라아."

"어서오세요, 타마시로 님."

"타~마~시~로~! 늦어!"

"미안, 히메미야 군~. 후시미 군 안녕! 이사라 군도! 오늘도 고생하네!"

"아하하... 라빗츠랑 컨셉회의 했다며. 잘 끝냈어?"

"으응... 배덕한 귀여움! 같은 걸 해보지 않을래~ 같은 말을 꺼냈다가 언데드랑 겹친다고 거절당했어어. 겹치는 게 신경 쓰이면 언데드랑 합동 무대를 하면 될 텐데~!"


 페코는 한숨을 쉬며 창가 옆에 설치된 그네의자에 앉았다. 폭신폭신한 쿠션들 사이에 푹 파묻히니 좀 살 것 같았다. 그녀는 방금도 사카사키에게 "오늘 다섯 시 정각, 분수대 앞에서 결투다!" 라는 신경질 섞인 외침을 듣고 온 참이었다. 아, 생각하니까 빡치네. 이런 씨... 헙. 페코는 입을 막았다. 다행히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텐쇼인 선배님이랑 하스미 선배님은? 나아 오늘 홍월 유닛복 디자인 때문에 학생회실 온 건데."

"병원 가셨대."

"그렇구나아. 으으... 사카사키 군이 오늘 다섯 시에 결투하자는데 어쩌지!"

"걔는 그거 포기 안 했대...?"

"몰라아! 와타루 선배한테 물어봤는데도 말 안해주구. 페코는 살짝 실망했어요!"


 그녀는 연두색의 쿠션을 꼭 끌어안고 몸을 콩벌레마냥 웅크렸다. 사카사키가 말 한 결투시간까지는 아직 한 시간 가량의 시간이 남아있다. 푸우, 하고 볼을 부풀리자 좀 나아진 것 같기도 했다. 요 근래 그녀의 거친 본성이 자꾸만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이게 다 사카사키 나츠메 때문이야! 페코는 얼굴을 푹 누르던 쿠션을 슬쩍 치워 다른 사람들을 쳐다봤다. 열심히 일하는 이사라와 서툴지만 서류를 읽고 있는 히메미야, 그의 옆에서 차를 준비하는 후시미의 모습이 눈에 박혔다. 페코는 약하게 한숨지었다. 나는 왜 나랑 저~언혀 상관없는 사람들 틈에서 이 난리람... 그녀는 의자에서 내려왔다. 들고 있는 연두색 쿠션은 제 자리에 놓고 자리를 정리했다. 그녀와 함께 의자에서 구르던 가방에서 쿠키 뭉치를 꺼내든 페코는 책상 위에 뭉치를 올려두었다.


"그럼 난 갈게~ 하교 준비랑 결투 준비 하러 가야하거든요!"

"아, 타마시로 님. 이제 막 차가 준비되었습니다만..."

"으응, 괜찮아! 안 마셔도 돼~ 텐쇼인 선배님 책상에 레이쨩 표 쿠키 올려뒀으니까 같이 먹어! 안녕~!"


 콩,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학생회실의 문이 닫히자 페코는 얼굴 가득 짓던 미소를 순식간에 지우고는 지친 한숨을 쉬었다. 2학년 B클래스에 들렀다가 미술실에 들러서 거의 완성해 놓은 그림에 약간의 배경을 더한 뒤 분수대로 향하면 시간이 얼추 맞을 것 같았다. 페코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제멋대로 놓인 의자들을 정리해 넣어놓고, 내일 사용하지 않을 교과서들을 챙겼다. 으아아악, 변태가면! 하고 소리치는 마시로 군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걸로 봐서는 와타루 선배가 또 마시로 군에게 공주님 풍 드레스를 입히려고 시도 중인가 보다. 푸풋, 하고 작게 웃은 페코는 발걸음을 조금 더 빠르게 했다. 미술실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미술실의 문을 연 페코는 한 구석에 놓여있는 이젤에 놓인 그림을 슥 쳐다보며 옆에 놓인 붓을 들었다. 옅은 노란색으로 몇 번 슥 긋고 살살 문지르자 캔버스가 연한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노을에 잠긴 유메노사키의 풍경이 캔버스에 있었다. 만족스럽게 그림을 쳐다보던 페코는 시계의 분침이 다섯 시 정각에 가까워졌음을 확인하고 급하게 미술실을 뛰쳐나왔다. 허둥지둥 분수대 앞으로 뛰쳐나가니 그곳에는 굉장히 순한 얼굴로 신카이와 대화하는 사카사키가 있었다.


"어라, 신카이 선배님?"

"아, 페코군요~ 「무슨 일」 있나요? 페코가 「분수」에 오는 건 오랜만이네요~"

"사카사키 군이 결투신청을 해서요! 에헤헤~"

"「결투」라니요… 나츠메, 친구랑 「싸우」면 떽! 이에요."

"으으... 죄송해요."


 페코는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고개를 푹 숙이는 사카사키를 보며 께름칙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카사키 나츠메가 저렇게까지 순해질 수 있는 거였나...? 그녀는 새삼 신카이를 돌아보았다. 분수 속에서 몇 시간이나 있었던 건지 신카이는 물로 푹 젖어있었다. 페코는 표정을 웃는 표정으로 바꾸고 가방에서 수건 두어개를 꺼냈다.


"그보다 신카이 선배님, 빨리 돌아가시지 않으면 감기 걸릴 거에요."

"아, 그렇네요… 「감기」에 걸리면 또 모두가 「걱정」할 거에요…"

"자아, 타올 빌려드릴게요. 이거 쓰세요~"

"와아, 고마워요♪ 세탁해서 돌려줄게요~♪"

"뭘 이정도로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페코도 나츠메도 「집」에 잘 돌아가세요~"


 페코는 손을 들어 살랑이며 부실이 모여있는 쪽으로 걸어가는 신카이에게 인사했다. 한편 나츠메는 떨떠름한 얼굴로 페코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츠메는 어딘가에서 전해들은 "히비키 와타루에게 연인이 생겼다"라는 말에 지체할 것 없이 유메노사키로 달려와 보니 이렇게 작고 평범해 보이는, 별로 귀여워 보이지도 않는 계집애가 존경해 마지않는 와타루 선배와 교제중이라는 사실에 눈이 뒤집혀 결투 신청을 해 버렸다. 분명 별 볼일 없고 남에게 꼬리나 치고 다니는, 남에게 모든 걸 기대며 할 줄 아는 거라곤 투정부리는 것 밖에 없는 경박한 여자애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와타루가 제게 와서 "나츠메... 여자아이의 얼굴에 장갑을 던지면 안 됩니다." 하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을 때, 이 계집애가 그 새를 못 참고 와타루 선배께 다 일러버렸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페코는 그렇지 않았다. 오늘 미술 시간에 봤었던 주홍빛으로 물든 유메노사키의 풍경을 그려놓은 그림이 나츠메의 생각을 망치로 때려 부쉈다. 방금 전 페코가 신카이에게 보였던 사근사근하지만 명확하게 선을 긋는 태도가 부셔진 조각을 쓸어 담아 버렸다. 나츠메는 못마땅했지만 그녀가 존경해 마지않는 선배에게 꽤 잘 어울린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칭찬이 후하지 않은 나츠메의 입은 페코에게 무어라 말하려다가도 우물거리다 말았다. 페코는 뭔가를 말 할 것 같은데 꾸물거리면서 말하는 걸 미루고 있는 나츠메의 모습을 보며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페코는 사랑하는 와타루 선배에게 미움받을까봐 줄곧 숨겨왔던 거친 본성을 아주 살짝만 드러내기로 했다.


"네가 뭘 말할 진 모르겠지만 난 너 엄청 싫거든~ 그러니까 앞으로 나한테 아는 척 하지 마! 흥!"

"뭐, 뭐?!"

"그럼 나 빨리 가서 와타루 선배한테 라인 보내야 하니까 갈게. 안녕~"


 나츠메는 어이가 사라진 표정을 지으며 페코를 쳐다보았다. 페코는 혀를 살짝 내밀어 메롱하고는 한 치의 고민 없이 등을 돌렸다. 스트레스가 확 사라진 느낌에 페코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사카사키의 "야!!!!!!" 하는 화난 목소리가 통쾌했다. 사카사키가 제안했던 결투는 흐지부지 되었지만 페코는 아무래도 좋았다. 흐흥, 빨리 집에 가서 와타루 선배랑 라인 해야지!


 이 날 페코는 사카사키의 등장 이후 최초로 가장 평온한 꿈을 꿀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