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비파 / 노래의 왕자님 / 미카제 아이 / 분노
7대죄악 드림 합작
미카제 아이 x 현비파
분노(Wrath)
* 노래의 왕자님 All Star 미카제 아이 루트 네타 있습니다.
* All Star로부터 5년 뒤의 이야기입니다.
분노는 나의 곁에 있었다. 본래부터 도화선이 짧은 편이었던 내가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하 배려를 익혀온 덕분이었다. 때때로 조금씩 화를 내고 그것으로 내면 깊숙히 눌러놓은 분노를 잠재웠다. 그것이 터지게 되는 순간이 있다. 고요한 바다를 흐트려놓는 붉은 손길은 때때로 나를 위협하기도 했다. 나는 그것을 제어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나를 찾아왔을 때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내 속에서 들끓었다. 나와 동생은 10분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동안 가장 깊은 분노를 서로에게 퍼부었다. '네가 지금 나한테 한 짓이 어떤 것인지 알기나 해? 난 너를 믿고 얘기했어. 커밍아웃이란 그런 거라고.' '그래서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 언니가 무성애자라는 걸 깜빡한 것뿐이잖아. 내가 틀린 말 했어? 그 집단 사람들이 동성애를 퍼트리고 있는 건 맞는 말이잖아!' '잠깐 잊고 기억 속에 묻어두고 조심하는 거랑, 아예 까먹고 나한테 그런 말을 지껄이는 게 같을 거라고 생각해? 게다가 넌 내가 얘기해줄 때 모든 이야기를 흘려들었나 보네.' '그럼 내가 언니한테 무릎이라도 꿇어야해?' 그 순간 내 분노는 갈 곳을 잃었다. 어깨를 늘어트렸다. 그 위로 슬픔이 밀려왔다. 동생의 눈에는 표독스러운 분노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더 이상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일본으로 넘어오는 날, 동생은 문자로 딱 한 마디를 남겼다. '이대로 가면 정말 끝이야.' 대답하지 않았다. 용서를 강요하는 동생의 모습은 이제까지 보아왔던 그 어떤 사람보다 더 악마와 닮았다.
빨간색 펜을 놓고 원고지를 보았다. 붉은 칸 안에 검은 글씨로 듬성듬성 적힌 글자들이 모두 모여서 각 문장을 만들어낸다. 그 위마다 조금 기울어진 수정 줄과 각종 부호들, 바꿔넣을 단어들이 빼곡히 채워져있다. 마감이 급할 때는 컴퓨터를 잡고 있는 게 보통이지만 지금 하는 작업은 다른 마감과 겹치지 않고 기간도 여유로웠다. 출판사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 원고였다. 원고를 모두 마치고 출판사에 넘기고 나면 빠르게 진행될 터였다. 그 대비를 위한 기간을 주기 위해서도 조금 더 느긋하게 작업 기간을 잡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침대 위에 던져둔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전원을 켜자마자 부재중전화와 문자 알림이 들어왔다. 대개 아이였으며, 출판사였으며, 담당자 세리였으며, 친구들이었다. 왜 전화를 안 받느냐는 미즈키의 문자 다음으로 뜬 번호는 앞에 +82가 적혀있었다. 허리가 곧추세워졌다. 심연을 들여다보았을 때 심연 안의 괴물과 눈이 마주치면 그에게 잡아먹힌다고 했던가.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경고를 하였다. +82 다음으로 적힌 번호는 본 적 없는 것이었다. 문자를 열었다.
[나야.
다음 달에 결혼해.
이것만 말할게.
오지마.
나한테 형제 없다고 얘기해뒀어.]
괴물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아이가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을 때 가장 먼저 고함을 들었다. 이 집에서 지낸 2년 동안 그들과 제일 거리가 멀었던 것이었다. 목소리는 분명 비파였다.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조금 익숙하면서도 가장 낯설었다. 그들이 만나고 한 달이 지날 때까지 익숙하게 접했던 것이었지만, 동시에 농도가 훨씬 깊었다. 붉은 물감에 검은 물감이 섞이는 것과도 같았다. 그는 얼른 문을 열었다. 고함은 피부에 날카롭게 스쳤다. "애초에 네가 잘못한 일이잖아. 내게 그렇게 상처를 줘놓고 제대로 된 사과 한 마디 없이 네가 먼저 인연을 끊겠다고?!" 10초 후 다시 이어졌다. "넌 지금 내가 네 사과를 안 받아준다고 나한테 투정 부리니? 용서는 강요하는 게 아니야. 받는 사람이 그것을 받을지 받지 않을지 결정하는 거라고. 네게 무슨 자격이 있다는 건데?" 문을 열고 들어갔다. 비파는 그가 들어온 것마저 눈치 채지 못한 듯 창문을 보며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래, 좋아. 끊어." 비파는 핸드폰을 침대 위에 던졌다. 핸드폰은 침대 위에서 굴러떨어졌다. 아이가 다가가서 핸드폰을 주웠다. 미처 끊기지 않은 통화 너머로는 분에 찬 고함이 들려왔다. 아이는 통화를 끊고 핸드폰을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비파."
"아, 아이. 왔어요?"
황급히 소매로 눈가를 닦더니 뒤돌아섰다. 고개는 여전히 살짝 숙인 채 아이가 다 대답할 새도 없이 비파가 계속 말을 이었다.
"미안해요. 통화하느라 온 줄도 몰랐네요.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어차피 이제 다신 연락 안 올 거예요. 나도 신경 쓰지 않을 거고요. 우리 오늘 저녁 산책은 어디로 갈까요?"
"비파."
평소라면 바로 마주했을 눈은 올라오지 않았다. 아이가 말했다.
"이리 와."
"괜찮아요."
"울어도 돼."
그대로 굳어버린 비파를 품에 안았다. 2분 25초 간 아무 말이 없더니 곧 얼굴을 품에 완전히 묻었다. 옷이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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